‘장애 있으면 집에나 쳐박혀 있지 무슨 공부한다고…’ 서울대 합격한 아들에게 한 엄마의 이 한마디에 모두 오열하고 말았습니다.

사실 우리 집은 집안 형편이 좋지 않았습니다.

모든게 부족한 상황이었죠.

항상 옷은 주변에서 얻어서 입거나 옷 폐기함에서 구해서 입어야 했습니다.

낡고 헤진 것투성이였습니다.

집안은 항상 지저분하고 곰팡이가 있었습니다.

학원에 다녀야 했지만, 돈이 없어서 학원에서 일해서 강의를 들어야 했습니다.

수업을 끝나면 강의실을 청소하고 칠판을 지워야 했습니다.

이렇게 힘들었지만 그래도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저에게는 사실 장애가 있었습니다.

한쪽다리를 심하게 저는 소아마비 장애인 이였습니다.

한쪽 다리를 끌고 공부에 집중했습니다.

옷은 해져서 옷이 아닌 것처럼 보였고

먹을게 없어서 편의점에서 삼각김밥으로 끼니를 때워야 했지만

그래도 공부에 대한 열정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추운 겨울날 어머니는 나를 먹여 살리기 위해서 시장에서 장사하셨습니다.

당시 저는 책을 살 돈이 필요했기에 장사하시는 어머니가 계신 시장으로 찾아갔습니다.

하지만 어머니가 추운 겨울날 힘들게 장사를 하시는 모습을 보고는

그만 발길을 돌려야 했습니다.

저는 공부에 더욱 집중하게 됩니다. 잠도 설쳐 가면서 밤새우면서 공부했습니다.

엄마를 위해서 가족을 위해서 피땀 흘려 공부했습니다.

하나 있는 형은 엄마가 장사하시는 모습을 보다 못해 함께 장사하러 나섰습니다.

그렇게 엄마와 형은 가족을 위해서 새벽부터 밤늦게 까지 시장에서 장사하셨습니다.

그렇게 저는 더욱 힘들게 그리고 치열하게 공부를 했습니다.

그토록 바라던 대학 입시 당시 저는 한 합격 통지서를 들고 엄마가 계신 시장으로 달려갔습니다.

어머니께 그리고는 말씀드렸습니다. 엄마 나 합격했어

바로 그 합격 통지서는 서울대학교 합격 통지서였습니다.

어머니 그리고 형 그리고 저는 그렇게 한참을 부둥켜안고 울었습니다.

어머니는 그날 장사할 때 돈도 받지 않았습니다. 형은 자신의 손수레에 저를 싣고 온 시장을 돌아다녔습니다.

그날은 정말 오랜만에 온 가족이 함께 몇천 원짜리 저녁 식사를 함께했습니다.

그렇게 저는 자랑스럽게 서울대학교에 입학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는 형도 역시 학업을 놓지 않고 공부해서 대학교에 입학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는 굴지의 기업에 입사해서 어머니와 형과 함께 미국에서 행복한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고 합니다.

자신을 위해 모든 걸 희생하신 어머니 그리고 형과 함께 한 이 인생 역전 이야깃거리 감사합니다.

행복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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