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계동에 슈바이처라고 불리우던 김경희 원장은 진정한 의료인으로서 사회에 큰 기여를 한 훌륭한 인물입니다.
그는 1920년에 서울에서 태어나 일제시대 한 한의사의 손자로 태어났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건강에 어려움을 겪었으며, 1936년에는 폐결핵으로 인해 죽을뻔한 고비를 경험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 순간부터 “헐벗고 굶주린 사람들을 위해 일생을 바치겠다”는 다짐을 했고, 이후 평생을 빈곤한 이들을 돕기 위해 헌신했습니다.
1941년에는 세브란스 의과대학에 진학하여 보육원의 아이들을 치료하는 일을 시작했습니다.
광복 이후에는 일본과 만주 등에서 귀국한 무의탁 동포들을 무료로 진료해주었습니다.
휴전 이후에는 일본 교토대 의학부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귀국하여, 답십리, 청계천, 망원동, 한강 뚝방 판자촌 등 서울뿐만 아니라 전국의 빈민촌을 돌며 무료 진료 봉사를 지속했습니다.
1984년에는 상계동에 ‘은명내과’를 개설하여 천원 진료로 유명해졌습니다.
전국민의료보험이 시행되는 1989년까지 은명내과에서는 많은 사람들에게 저렴한 진료를 제공했습니다.
김경희 원장은 자신의 병원을 운영하는 동시에, 은명장학회를 설립하여 2천여 명의 학생들을 지원했고, 무료 독서실을 운영하며 빈곤한 노인과 몸이 불편한 사람들을 위한 심부름 서비스를 제공하는 등 다양한 사회적인 활동을 펼쳤습니다.
김경희 원장은 또한 심장수술후원회를 결성하여 선천성 심장병 환자들에게 치료를 제공했습니다.
2000년에는 ‘은명마을’이라는 프로젝트를 시작하여 가난한 가정 100가구를 지원하였습니다.
은명마을은 건강과 살림살이, 경조사까지 종합적인 지원을 통해 사람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데 기여했습니다.
김경희 원장은 자신의 재산을 연세의료원과 모교에 기부하여 사회적인 발전에도 기여했습니다.
그의 봉사 정신과 의료계에 남긴 업적은 세브란스병원의 대강당 이름에 그의 호 ‘은명’을 붙여 기리고 있습니다.
고인은 서울 정동제일교회 수양관 벧엘동산에 안장되어 영원한 휴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김경희 원장의 봉사와 헌신은 많은 사람들에게 큰 영감과 격려를 주었으며, 그의 업적은 우리 사회에서 존경받고 기리어져야 할 가치로 남아있습니다.
그의 정신을 계승하여 우리도 사회에 기여하는 데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